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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이야기

내 마음의 평화

by 흐르는 강물처럼... 2013. 11. 14.

 

모든 종교의 목표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쉽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되어야 천당을 가거나 성불할 수 있는 것이지 마음이 불안함, 우울함, 비탄, 분노, 공포, 증오심등의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찼다면 천당이나 성불은 고사하고 지옥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이다. 마음이 편안해야, 다시 말해 마음이 고요히 차분히 가라앉은 상태가 되어야 사물의 실체를 꽤뚤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되므로 마음의 고요함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수행하는 이들에겐 몹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행자에겐 그 무엇이라도 마음의 평정심을 잃을 만큼 중요하고 대단한 것은 없다. 수행자가 잠시라도 방일하는 순간 번뇌는 수시로 마음을 침투해 오염시키고 마음이 그런 번뇌에 반응해 의도를 일으키는 순간 새로운 업이 생성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대상과 감각기관의 접촉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세계를 항상 깨어있는 상태에서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눈으로 보건, 귀로 듣건, 코나 입으로 접하건... 접촉하는 대상들로부터 번뇌가 일어나는 순간 알아차려서 차단시켜야 한다. 그리고 지금 접하는 대상들이 나에게 꼭 필요한가? 도움이 되는가? 해가 되는가? 전혀 이득이 없는 하찮은 것인가? 판단하고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삶에서 접하는 수많은 대상들은 우리로서 피해야하고, 또한 필요도 없고, 꼭 마주해야 한다면 깨어있음으로 마주하여 번뇌에 끄달려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재가자로서 항상 매순간 깨어있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때론 순간의 방일함으로 번뇌의 지배를 받지만 다시 알아차리고 관찰하여 일어난 번뇌가 증장되지 않도록 끊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마음에 매순간 들어오는 대상들을 면밀히 감시하는 사띠 문지기를 하나씩 꼭 두어야 한다. 

 

 

렇게 항상 자신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은 줄기 마련이고 내면의 고요함과 평화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하고, 필요없는지 삶의 우선순위가 더 확실해져 그에 맞게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는 즉, 예전처럼 남을 위한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수행을 하다보면 나 자신의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나의 행복을 위해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수행자의 입장을 모르고 함부로 험담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이들이 번뇌로 인해 혼란스러위진 마음상태에서 오는 괴로움과 그런 괴로움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렇게 섣불리 수행자들을 자기들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진정 평화로울 수 있을 때 남과도 평화로울 수 있다. 그러니 나의 평화를 위해 내가 수행에 몰두하는 것을 어찌 이기주의나 소극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불교하면 남에게 자비를 베풀어야만 하는 줄 알고 있다. 남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당연히 불교의 기본적 사상중 하나이지만 남에게 베풀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베풀줄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 베품이란 의식 깊이 뿌리 박힌 번뇌와 갈애를 제거하고 마음을 청정히 하여 행복의 길로 나아가는 수행정진을 말한다. 번뇌가 하나 둘씩 제거되며 마음이 자유롭고 평화로워지고 수행을 지속하므로 지혜는 더욱 성숙된다. 이렇게 먼저 자신의 마음에 중심이 바르게 잡혀야 모든 상황에서도 나와 남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 서로에게 이로울 수 있지만 마음엔 아직도 번뇌가 들끓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은 돌볼 줄 모르고 무조건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의 길로 가는 것도 아니고 깊은 지혜를 터득하지도 못하게 된다. 특히 고통받는 남을 위해,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려는 목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어 활동하는 경우 정작 자신의 마음이 온통 불의에 대한 분노나 원망으로 들끓고 있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새로운 불선업을 더 만드는 것이며 수행이 추구하는 목표와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 "당신만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아무래도 좋다. 어떤 고통이라도 감내하겠다. 오직 그대의 행복을 위하여!" 하고 남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혹사시키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크나 큰 사랑과 헌신 같지만 이 또한 한쪽으로 치우친 잘못된 관점에서 비롯된 집착이고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모르는 데서 오는 착오라 할 수 있다. 남의 행복을 위해 나의 행복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남의 행복이 중요한 만큼 나의 행복 또한 중요하다. 그러므로 남의 행복, 나의 행복 모두 존중해주어야 한다. 내가 있으므로 남이 있고 세상이 있기에 내가 행복하고 내가 올바른 지혜를 증득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행자가 지향하는 행복이란 남의 행복을 조건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수행자의 임무는 내가 얻은 행복을 남도 똑같이 누릴 수 있도록 방법과 길을 알려주어 모두 행복해 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나 자신을 위해 수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많은 일반불자들이 이점을 놓치고 있다. 내가 행복하면 남도 행복하고 세상도 행복해지지만 내가 불행하면 모든 것이 괴롭고 그런 괴로움은 남에게도 전달되어 모두가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기에 자비관을 할 때에도 내가 모든 악의에서 벗어나 행복할 수 있도록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 축원을 하는 것이 아닐까? 

 

 

오래전 어느 블로그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위빠사나 수행을 접해본 어느 불자의 글인데 어느날 그만 집에서 초상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왔는데 그중 자신에게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해주신 스님도 함께 방문해 주셔서 무척 감사하였다고 한다. 어느 초상집과도 같이 임종한 이의 가족들과 친지들은 큰 슬픔과 비통에 잠겨 있었는데 그 스님께서 슬픔에 젖어있는 가족들에게 간단한 법문을 해 주신 후 모두 둘러 앉아 눈 감고 함께 명상을 하자고 하셨단다. 이런 분위기에서 명상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스님이 그러시니 다 같이 둘러앉아 명상을 하였단다. 눈을 감고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주시하는 명상을 길게 하지도 않았지만 명상이 끝나고 눈을 떳을 때는 마음이 아까와는 달리 편안히 가라앉아 자신도 무척 놀랐다는 것이었다. 이 스님은 임종한 이를 위해 영가천도를 하지 않고 대신 지금 당장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고 슬퍼하며 고통받는 가족들을 위해 그들이 슬픔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신 것이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으므로 힘든 상황을 더 잘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게 해주신 그 스님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글을 매우 감명깊게 읽었던 것이 기억난다.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상황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이를 다르게 말한다면 일단 내 마음이 먼저 편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고통받는 이들에게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수행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는 방법을 일러주어야 할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고 평정심을 갗추어야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대처할 수 있고 각 상황에 맞는 올바른 행동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진행되기에 항상 마음의 평화를 유지함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순간 순간을 어떤 마음상태로 맞이하고 있나? 수행하는 이들은 이렇게 항상 자기 자신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살이에 쫒겨 살면서도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은 수행으로 얻는 큰 혜택이다. 바쁘고 정신없는 삶을 살아가며 때로는 심신이 지치고 고단해질 때에는 일단 모든 것을 멈추고 내려 놓는다. 모든 것이 일체 정지된 상태에서 조용히 관찰을 한다. 고요한 적막속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매순간 변화하는 감각을, 떠오르고 사라지는 생각과 감정들을 조용히 바라만 본다. 몸과 마음속으로 탐구해 들어가며 진정 우리의 마음을 쉴 수 있는 고요한 쉼터를 발견한다. 

 

 

우리 내면의 쉼터에서 얻는 평화는 삶에서 겪는 역경과 고난을 인내할 수 있게 해주고 보다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바른 안목을 길러준다. 이렇게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우리의 안락처는 참으로 고귀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이 가야할 곳이며 아직 그곳을 모르는 이들에겐 먼저 간 이들이 그 길을 제시해주어 모두 그 안락처에 도달해 편안히 마음 놓고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야 말로 참된 보시이며 진정한 보살행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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