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이들에게 16 단계의 통찰지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열정을 갖고 최종 목적지를 향해 세찬 번뇌와 갈애의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고자하는 수행자들에겐 16 단계 통찰지혜는 여행길에 필요한 나참반이나 지도와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자신의 수행경지를 파악할 수 있는 이 16 단계 통찰지혜는 많은 수행자들의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빨리 수행의 진보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 보면 수행에 대한 열정이 집착으로 변하는 상황이 생긴다. 특히 16 단계에 너무 집착해 자신의 상황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갈망하거나 확실한 검증 없이 자신의 수행경험을 16 단계에 비교해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경지를 과대평가하는 상황이 도발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16 단계 통찰지혜가 오히려 수행에 큰 장애가 된다. 특히 수행경험이 적은 사람들에겐 적어도 그들의 수행이 어느 정도 무르익기 전 까지는 통찰지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수행을 돕는 계기가 될 것이다. 주로 그런 이유로 일부 스승들은 수행점검을 할 때 수행자의 경험과 수준에 따라 16 단계의 지혜에 대해 아예 침묵하거나 상세히 설명을 해 주기도 한다. 어떤 스승들은 16 단계를 아예 무시해버리고 수행자가 경험한 것만을 토대로 수행경지를 판단한다.1
그러면 어느 때 이 통찰지혜의 16단계를 알아야 할까? 수행의 길은 항상 지속적으로 평탄하지 않고 한때 힘들다가 쉬워지고 또 편안하고 즐겁다가 괴로워질 수 있는 쉽고 어려운 과정들을 반복해가며 나아가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수행이 잘 되기도 하고 잘 안되기도 하는 누구나 다 거쳐가야 하는 수행의 굴곡이 있다. 수행자의 수행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 신비롭고 황홀한 체험을 하게 되거나 오히려 예전보다 더 괴롭고 힘든 경지에 부딫히는 경우가 생기는데 수행자들로서 알아야 할 것은 위빳사나 수행과정에서 체험되는 현상들은 단지 알아차려야 할 대상일 뿐이란 것이다. 수행하면서 나타나는 아무리 좋고 싫은 현상들도 모두 무상하므로 수행자는 그에 집착하지말고 알아차리고 흘려보내야 되는데 막상 이런 경지에 처음 도달하면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스승은 수행자에게 지금 일어나는 현상에 좋거나 싫다고 집착해 머물지 말고 그 다음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방편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때 스승은 16 단계의 통찰지혜에 대해 어느 정도 수행자에게 알려주어 지금 겪는 상황은 거쳐가야하는 하나의 과정임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만약 수행자가 16 단계의 통찰지혜나 수행과정에서 겪게 되는 경험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괴롭고 고통스러운 역경에 부딫혀 힘들어 할 때 스승마저 도움을 주지 않고 외면해버린다면 그땐 수행자에겐 큰 혼동이 찾아와 아예 수행을 포기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한국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일부 위빳사나 스승들이 수행을 잘 이끌어주지 못해 수행자들이 큰 곤경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수행자마다 차이는 있지만 수행을 해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일부 수행자들은 감각기관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몸에서 일어나는 희한한 반응과 급격한 감정변화 때문에 큰 혼동과 괴로움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스승의 지도가 절실히 필요한데 스승이 지도경력이나 수행경험이 부족해서 수행자가 수행으로서 문제를 극복하게 지도해주지 못하고 대신 수행자에게 정신과 치료를 권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실제 일어나고 있다. 만약 수행자가 과거에 정신병을 앓았던 적이 있다면 몰라도 정상인에게 수행에서 일어나는 부작용(?)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권한다는 것은 올바른 조언이 아니다. 수행하며 겪는 괴롭고 힘든 상황들은 수행으로 다스리고 치료해야 한다. 수행을 하며 괴로운 단계에 부딫혀도 지금 이 현상은 거쳐가는 과정일 뿐, 여기서 밀고 나가면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 시켜주면 수행자로선 괴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혼동과 낙담에 빠져 수행을 포기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수행과정에서 오는 괴로움도 싫어서 저항해선 안되지만 희열 또한 좋아서 집착할만한 대상이 아니다.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예리한 통찰력과 집중력이 개발되며 강력한 희열을 경험하고 수행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 단계는 일반 위빳사나 서적에도 잘 서술되어 있는데 어떤 수행자들은 이 단계에서 마치 자신이 도과를 이룬줄 알고 착각할 정도로 강력한 체험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단계 또한 거쳐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 오래 지속되지 않을 뿐더러 그 다음에 오는 단계는 더 힘들고 어려워질 수 있다. 통찰지혜가 진행되는 과정을 모르면 사라진 과거의 좋았던 체험들을 다시 경험하고 싶은 집착을 일으키거나 예전의 좋았던 체험들과는 달리 오히려 괴롭고 고통스러운 단계가 오면 싫어서 저항하는 집착을 일으키고 자신의 수행이 퇴보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통찰지혜의 과정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다면 수행시 나타나는 좋거나 나쁜 현상들은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해선 않되고 오로지 수행대상으로만 받아들여야 함을 알게 된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수행자가 이런 수행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은 길게 볼 땐 수행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곳 미국 위빳사나 수행자들은 16 단계 통찰지혜에 대해선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처음에 16 단계에 너무 집착해서 저지른 실수 또한 잘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비추어봐 16 단계 통찰지에 대해 너무 몰라서도 안되지만 너무 알아서도 안된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이말은 즉 통찰지에 대한 지식은 필요하지만 너무 집착하면 수행에 큰 장애가 될 수 있으므로 통찰지에 관해선 올바른 마음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행자들이 처음 16 통찰지에 대해 알게 될 땐 중도의 마음을 유지하기 보단 열정과 흥미가 앞서 주로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이 집착없이 16 통찰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지니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누구나 다 수행목표를 달성하고 싶은 열정이 강하기에 자신의 위치가 16 통찰지에서 어디 정도 되는지 무척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도달하고 싶은 단계를 목표로 두고 수행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원하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될 땐 큰 실망과 괴로움을 겪게 된다. 결국 이런 16 통찰지에 대한 바르지 못한 집착이 수행을 더 고달프게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야 집착으로 인한 괴로움의 결과를 스스로 터득해 16 통찰지에 대한 집착을 자연스럽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16 통찰지에 대한 바른 이해는 있어도 그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게 될 때 수행이 한결 더 수월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16 통찰지에 너무 집착해 비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은 실수였지만 이런 실수를 통해 괴로움을 수반하는 집착심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런 집착을 내려놓고 더 높게 성장할 수 있게 되므로 이런 실수는 수행과정에선 필요한 부분이고 우리를 일깨워줄 수 있는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예전에 위빳사나 16단계의 통찰지혜에 대해 글을 올린적이 있다. 단계별로 체험되는 현상들을 더 자세히 다루어 보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올렸는데 한국은 미국과는 달리 수행자들이 스승의 부주의나 무경험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없다고 본다. 내가 예전에 한국에서 수행할 때에도 수행자들에겐 자상할 정도로 매우 상세하고 체계적인 수행지도 과정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기억난다. 한국에 유능한 스승들과 이런 훌륭한 지도 방식이 있는한 위빳사나 수행자들이 길을 잃고 방황할 일은 없다고 본다. 그런면에서 내가 괜한 필요없는 글을 올렸나 싶어 한때 삭제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미 많은 한국의 위빳사나 카페나 수행처 홈페이지에서 16단계 통찰지에 대해서 설하고 있기에 내 글이 큰 피혜를 끼치진 않을 것 같아 간직하기로 했다.
어느 대상이건 우리가 집착을 하는 순간 괴로움은 시작된다. 수행을 열심히 하고자 하는 열정은 좋지만 자칫 지나치면 집착으로 변하기 쉽다. 우리 수행자들은 그런 집착심을 일으키지 말고 올바른 균형을 유지한 중도의 마음가짐으로 수행에 임해야 할 것이다. 위빳사나의 16 단계의 통찰지혜도 우리가 집착을 하면 아예 모르는 것보다도 못한 큰 장애가 될 수 있지만 집착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가야할 수행의 길을 밝게 밝혀주는 등불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 왜 그런가 하면 모든 수행자들이 16 단계와 일치되는 경험을 하지 않기에 그들의 수행진보를 꼭 16 단계에만 비교하고 맟추어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16 단계라는 것도 원래 경전에는 10 단계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마하시 사야도가 더 세분화해서 16 단계가 된 것이라 마하시 전통이 아닌 다른 전통의 위빳사나 수행처에서는 16 단계에 근거해 수행진보를 판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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