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알려진 위빳사나의 큰 스승중 한분이신 아잔 차 스님
아잔 차 스님은 세계의 수많은 수행자들로 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위빳사나 스승이시다. 잭 콘필드 (Jack Kornfield)를 비롯한 서양의 많은 스님과 재가법사들이 아잔 차 스님에게 수행을 지도받았다. 비록 수행법은 다르지만 숭산스님이 도반으로 여긴 아잔 차 스님은 한국에서도 잘 알려졌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전글에 잠깐 언급한 아잔 차 스님의 수행담 에피소드는 스님의 법문과 가르침을 담은 저서 - Food for the Heart, Chapter 22. In the Dead of Night p.257 (국내판 - 아잔 차의 마음) 에 상세히 기록됐는데 그 수행담에 관해 더 상세히 밝히고자 한다. 스님은 저서에서 당신이 겪은 그 수행담에 관해 법문을 길게 하셨지만 용량상 모든 부분을 다 올릴 순 없어 그중 가장 중요한 수행담에 대한 부분만 나름대로 번역을 해서 올리니 만약 깔끔한 번역이 나오지 못했더라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영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어느 부분은 영문과 꼭 맞는 한글번역이 나올 수 없었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다른 일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만약 계속해서 변명거리들을 만들고 나 자신과 타협을 한다면 절대 안갔으리라. 그래서 사미승을 데리고 무작정 나섰다. "이제 너의 공포와 마주해야 한다." 하고 나 자신에게 속삭였다.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죽어도 좋다는 각오를 하고 나섰지만 속으론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가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조건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아마 끝내 못 갔을 것이다. 그래서 무작정 나섰다.
난 여지껏 시체 안치소1 (charnel ground) 에서 머물러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시체 안치소에 도착했을 때 그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함께 온 사미승이 나와 같이 있고 싶어 했지만 난 그를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냈다. 사실 난 사미승을 정신적 안정을 위해 내 곁에 가까이 머물게하고 싶었지만 그런 나약함을 나로선 용납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극심한 공포심이 몰려 올지라도 오늘 밤에 끝장을 보리라!" 하고 나 자신을 격려했다. 좀 겁이 나기도 했지만 용기를 냈다.
막 어두워지고 있을 때 시신2을 들고 마을주민들이 시체 안치소로 찾아왔다. 그걸 보는 순간 그 곳에서 도망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했었다. 마을주민들은 나에게 장례예불을 해주길 바랬으나 난 거절했고 그들로 부터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잠시 피했다. 주민들이 모두 떠난 후 내 자리로 돌아와보니 하필이면 바로 옆에다 시신을 묻어 놓고 간 것이었다. 그리고 시신을 날랐던 대나무로 날 위해 단상까지 만들어 놓았다. 마을에서 적어도 2, 3 킬로미터 떨어진 이 외딴 곳에서 이제 난 뭘 해야 할까?
"만약 여기서 내가 죽게 된다면 기꺼이 죽으리라!"
용기를 내서 이런 상황에 부딫혀보지 않으면 그 기분이 어떤지 모를 것이다. 이건 정말 굉장한 경험이었다. 밤이 점점 깊어지자 이 시체 안치소에서 도망칠 수 있는 길이 어디 있을까하고 생각해봤다.
"죽어야 한다면 죽자. 어짜피 태어난 존재는 죽을 수 밖에 없으니."
밤하늘은 나에게 나무위에 매달아 놓은 모기장안으로 들어가라고 속삭이는 듯 했다. (태국을 비롯한 남방 스님들은 숲속에서 정진할 때 나무가지에 모기장을 매달고 그 안에서 수행을 한다. 왼쪽 사진 참고) 행선을 그만 마치고 모기장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행선을 하는 도중 내가 시신을 묻은 곳을 향해 걸어가면 뭔가가 날 멈추게 하려고 잡아 당기는 듯 했다. 마음 안에서 두려움과 용맹심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듯 했지만 난 계속해서 행선을 했다. 수행자는 바로 이런식으로 자신을 단련시켜야 한다.
밖이 아주 캄캄해져 모기장안으로 들어오니 마치 일곱개 층의 두꺼운 벽으로 둘러 쌓인 것 같았다. 그리고 옆에 놓은 발우 (스님들 공양 그릇) 를 보니 마치 반가운 옛친구가 나와 함께 있어 주는 것 같아 안심이 됐다. 발우도 때에 따라선 이렇게 좋은 친구가 될줄이야!
모기장안에서 앉은 체로 시신이 묻혀진 곳을 바라보며 밤을 보냈다. 눕거나 졸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 졸고 싶어도 졸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그렇다! 진짜 무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새도록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이렇게 용기를 갖고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누가 시체 안치소에서 밤을 샐만한 용기가 있는가?3 수행이란 이렇게 직접 실행으로 옮겨야 그에 따른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날이 밝아오자 "아! 결국 해냈구나!" 하고 나 자신에게 외쳤다. 매우 기뻤다. 괜한 두려움 때문에 어두운 밤은 아예 존재하지 말고 햇빛 쨍쟁한 대낮만 존재했으면 하는 바램이 들 정도였는데 막상 해보니 별것 아닌 것 같았다.
탁발을 하고 돌아와서 공양을 마치니 기분이 좋았다. 내리 쬐는 햇빛은 따듯하고 아늑했다. 좀 휴식을 취한 후 산책을 했다. 오늘밤은 더 편하게 잘 수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제밤도 별 문제 없이 잘 넘어갔는데 특별히 더 염려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다 오후 늦게 동네주민들이 또 하나의 시신을 가져 왔다. 이번에 가져온 것은 성인의 시신이었고 그 시신을 나의 모기장 바로 앞에다 놓고 화장해버렸다. 그래서 "그래, 좋다. 바로 내 자리 앞에서 화장을 하니 그건 오히려 내 수행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장례예불은 시행하지 않았다. 동네주민들이 떠날 때까지 기다린 후 시신을 쳐다봤다.
밤새도록 불에 타는 시신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두려움은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캄캄한 밤중에 시신은 깜박거리는 빨갗고 푸른 불빛속에서 탁탁거리는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불에 타고 있는 그 시신 앞에서 행선을 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신 타는 냄새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결국 난 모기장안으로 들어와 타오르고 있는 불을 등 뒤로 한 체 자리에 앉았다. 마치 공포심으로 눈이 빳빳하게 굳어 버린 듯한 지금 이 상황에서 취침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이 칠흙같은 밤중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고 도망칠 곳도 없었다.
"내가 여기서 앉은 체로 죽으면 죽었지 절대 여기를 떠나지 않으리라!!!"
누가 제 정신으로 이런 수행을 일부로 자진해서 할까? 만약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강한 신심과 확신이 없다면 절대 못하리라!
한 밤 10 시가 됐을 무렵 나는 여전히 불을 등 뒤로 한 체 앉아 있는데 갑자기 무엇인진 잘 모르겠지만 뒤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타고 있던 시신이 땅에 떨어졌나? 아니면 들개가 시신을 물어 뜯는 것일까? 아니, 그 소리는 마치 큰 물소가 천천히 걸어 오는 듯 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무시해 버리려는데 물소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내 뒤로 점점 다가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물소는 아니였고 마치 사람이 걷는 것 처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 바스락 낙옆 밟는 소리를 내며 서서히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확히 내 앞에 서지는 않고 내 주변을 돌다가 사미승이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그후 다시 조용해졌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두려운 마음이 올라오니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리고 한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사미승이 있는 곳에서 발걸음 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꼭 사람이 걸어오는 것처럼 내가 있는 곳으로 점점 다가 오는 것이 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치 나를 밟고 지나가려는 듯이 나를 향해 곧바로 직진해 오고 있었다. 그래서 난 눈을 감은 후 절대 눈을 뜨지 않기로 결심했다. "눈을 감은 체로 죽으리라!"
정체 모를 그 존재는 나에게 점점 가까이 오더니 바로 내 코앞에서 딱 멈춰 섰다. 그리고는 마치 불에 타버린 손을 내 눈앞에 갔다대고 위 아래로 흔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그 순간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붓도, 담모, 상고 4만트라도 까막케 잊어버렸다. 난 태어난 후 지금까지 이렇게 공포에 떨어본 적이 없었다. 그 때 어찌나 두려웠는지 마치 두려움이 내 머리 끝까지 차고도 계속해서 넘쳐흐르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내면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두려워 하고 있지?"
"난 지금 죽음 때문에 이렇게 두려워 하고 있다." 내면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답변을 했다.
"그래? 그러면 그 죽음이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죽음이 거주하고 있나?"
"죽음은 바로 내 안에 있다!"
"만약 죽음이 내 안에 있다면 죽음을 피하려고 어디로 도망칠 수 있는가? 다른 곳으로 도망쳐도 죽을 것이고 이곳에 머물러도 죽을 것이다. 어디를 가던 죽음은 항상 따라다닐 것이다. 왜냐면 죽음은 바로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건 두려워하지 않건 결국엔 어짜피 죽게 되어 있다. 그러니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바로 그 생각이 든 후 모든 두려움이 일체 사라져버렸다.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그 강력한 두려움을 그렇게 손쉽게 없애 버릴 수 있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마음속에서 큰 용기가 일어났으며 나의 의식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나의 두려움을 정복하자 거센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난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나무 가지가 꺾여 내 머리에 떨어질지라도 신경 쓰지 않았고 두렵지도 않았다. 폭우는 매우 심하게 쏟아졌다. 나중에 비가 그쳤을 때는 모든 것이 흠뻑 젖었다. 하지만 난 움직이지 않고 계속해서 앉어 있었다.
폭우로 흠뻑 젖은 후 그 다음 난 무엇을 했을까? 그저 하염없이 울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왜 여기서 고아나 버림받은 아이처럼 비에 흠뻑 젖어가며 앉아 있는가? 마치 가족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망명자의 신세처럼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지금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밤새도록 비에 젖어가면서 수행하고 있는 스님이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하리라. 이게 다 뭐하는 짓거리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내 자신이 너무 처량하고 측은하게 여겨져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물도 쓸모 없는 것이다. 아예 다 말라서 없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흘러 나와라."
나의 두려움을 극복한 후 계속해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찰하였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엔 불가능했다. 그리고 붓다가 설하신 대목을 떠 올렸다.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i" "현명한 이들이 각자 스스로 알 수 있는 것."
내가 밤새도록 비 맞아가며 갖은 고생 끝에 체험한 것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오직 나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공포속에서 떨다가도 순식간에 그 공포가 사라진 것을 나말고 누가 증언할 수 있나?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그 경험이 어떤한지 상상도 못하리라. 그것은 오직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었으므로 나밖에 모를 것이다. 내가 경험한 것을 남에게 말로 설명한들 그들은 정확히 알 수 없으리라. 왜냐면 그런 경험은 모두 각자가 수행을 통해 스스로 터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잔 차 스님의 법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지만 용량상 여기까지만 올리고자 한다. 아잔 차 스님은 교학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의 실질적 수행 경험을 토대로 가르침을 펴시기에 전혀 고리타분하거나 지겹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점이 스님의 특징이며 매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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