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운지는 오래되었어도 마음이 고단한지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남들이 보기엔 막막하고 암담하게 여길 삶의 여정을
수행과 함께 하므로 별 근심이나 낙담 없이 지금까지 밟아오고 있다.
때로는 긴 터널을 걷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얼마를 더 가야 바깥세상의 풍광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 때도 있다.
거의 매일 송곳처럼 따갑고 아프게 느껴지는 고통의 대상과도 마주쳐야 하지만
괴로움이나 불쾌감이 찾아와도 한 순간 지나가면
다시 안정된 마음상태로 돌아오니
하루 하루 매순간 불안감이나 좌절감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유일히 오늘 밤은
여지껏 새로운 변화나 발전이 보이지 않는 나의 막막한 일상에 지쳐감을 느낀다.
순간 변화가 없는 지루한 삶과 경제적 불안감의 압박이 느껴지며
동시에 나를 힘들게 하는 고통의 대상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
순식간 마음속에 산불처럼 퍼져 나간다.
하지만 그런 고통의 대상이나 지금의 힘든 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은
결국 우울심으로 변해 마음을 더욱 어지럽힌다.
부정적인 감정들로 휩쌓인 나의 마음을 바라보며
이것은 진정 괴로움이라고 인식한다.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런 삶의 여정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기 시작한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지금 이 상황에서 당장에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그렇다. 그냥 그렇게 훌쩍 떠나고 싶다.
현재 삶에 큰 미련이나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날마다 담마 (Dhamma, 法) 에 대한 갈증은 더해갈 뿐인데
무엇하러 지금 여기서 이렇게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며 시간만 낭비하고 있나?
그나마 수행으로 내면의 안식처를 찾아 외부세계에 함몰되어 노예처럼 끌려가지 않고
순간 순간 힘든 상황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유지할 수 있지만
지금의 안식처는 영원히 안주할 수 있는 굳건한 곳이 아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떠나자.
여행을 떠나자.
바로 마음의 여행을 떠나자!
이 기회에 아예 담마속으로 올인해 보자!
이보다 더 값어치 있고 의미있는 것이 있겠는가?
예전부터 생각해 놨던 몇몇 수행처들을 떠올리며 그곳에서 집중수행에 몰입해
한결 더 깊은 내면의 세계를 탐방할 것을 상상하니
좀전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강한 환희심이 일어나며 마음이 흥분되기 시작한다.
세속의 부와 명예에는 애당초 마음이 없으니
남은 여생을 담마에 맏기고
모든 세속의 결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와 자유로움속에서 살아가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이것 아니였나?
지금이 내가 갈구해오던 그 길을 갈 수 있는 시기이다.
아.... 생각할 수록 즐겁고 흥미진지해지며
마음에 또 다른 파장이 일기 시작한다.
하지만 파장이 점차 강해지며
마음이 들뜨고 산란해지며
법을 갈구하는 선한 의도가 서서히 갈애로 변해가는 과정이 보인다.
파동치는 마음을 바라보며
이것은 평화로움이 아닌
또 하나의 괴로움이라고 인식한다.
모든 생각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 호흡을 바라본다.
들숨, 날숨,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을
분명히 인식하며 주시하니
정신적으로 힘든 일상에 대한 불만이나
미래에 대한 동경심과 기대가 사라지며
양극을 오가며 흔들리던 마음이 멈추고
지금 이 순간에는 평화와 고요함만 존재한다.
잠시 잊었던 내면의 안식처로 되돌아 온다.
지금은 이 순간만 존재할 뿐
아무리 고귀한 목표를 세우고 행복한 나날을 구성한들
지금 이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불과할 뿐이다.
때로 힘들고 괴롭게 느껴지는 일상도 한순간 스쳐가는 현상일 뿐,
마음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에 빠지거나
지나간 한순간을 붙잡고 그것에 얽매여서
현재에 머물지 못하는 한
진정한 평화로움이란 있을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인식하며
다소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취침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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