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한국의 올림픽 축구 대표팀
난 한국채널들을 신청하지 않아서 내 케이블 TV 에서는 한국방송이 안나온다. 이곳 미국 채널은 미국팀을 위주로 한 올림픽경기들을 중계하기에 한국선수들이 참가하는 경기를 보기란 쉽지가 않다. 그나마 다행히 축구경기만 집중으로 보여주는 채널이 있어서 한국팀의 활약을 볼 수 있었다. 4강 진출을 위해 벌인 한국과 영국의 경기가 승부차기까지 가면서 한국팀이 어렵게 승리를 따냈을 때 한국과 영국 두 나라의 팬들은 매우 대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승리를 한 한국팀에 한국팬들은 기뻐서 열광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축제 분위기에 쌓인 반면 좌절하고 실망한 영국팬들은 쓰라린 패배를 맛봐야 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팀이 4강에 진출하게 된 것이 매우 감격스러웠지만 한가닥의 희망이 허무하게 무너진 영국팬들의 좌절감 또한 어렵지않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문득 지금 이 승리의 기쁨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를 비롯한 운동경기에서 승리의 기쁨이란 상대방을 밟고 올라서야 맛볼 수 있다. 내가 이기려면 상대가 져야 한다. 내가 이기면 기쁘지만 상대방이 이기면 기쁨은 온데 간데 없고 실망, 좌절, 성냄등을 경험할 것이다. 상대방이 겪는 패배의 고통을 나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겪을 수 있다. 그리고 4강에서 한국이 브라질에게 패하면서 영국 팬들이 겪었던 패배의 고통을 한국 팬들도 똑같이 겪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 그저께 오전 시간으로 한국은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는 우리나라 팀이 강한 외국 팀과 시합을 할 땐 조마 조마한 마음으로 경기를 보며 잔뜩 긴장한다. 그 긴장된 마음속엔 승리의 간절한 바램과 패배에 대한 두려움의 강한 집착심이 깔려있다. 우리 나라 선수들이기 때문에 즉, 우리 것이라고 연관시키는 강한 집착 때문에 승리와 패배로 인해 우리는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집착 없이 침착하고 평정한 마음으로 시합을 관람할 수 있을까? 만약 시합을 벌이는 두 팀들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 팀들이라면 그땐 다소 차분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집착심이 없어서라기 보단 무관심 때문일 것이다. 만약 진정 무집착으로 관람한다면 비록 우리나라 팀이 상대 팀과 치열한 결승전을 벌이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팀이 항상 승리하기를 바라더라도 그런 우리의 바램과는 무관하게 승패는 상대 팀과 우리 팀과의 실력과 경험차이, 시합날 선수들의 정신적 육체적 컨디션, 올바른 작전, 심판의 오류등의 조건으로 결정된다. 그러니 그런 운동경기의 실체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현명한 마음가짐이 있다면 어느 상황에서나 항상 우리 팀이 승리하기를 기대하는 비현실적인 바램이나 혹은 우리 팀이 패배했을지라도 사기가 꺾여 좌절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축구의 실질적인 경험과 이론에 대해 해박한 사람이 있다 치자. 그 사람은 경기를 관람할 때 마치 과학자가 현미경으로 생물을 관찰하듯이 모든 순간 순간을 놓치지 않고 예리하게 관찰해 경기의 전체적 흐름과 승패를 좌우하는 모든 조건과 원인을 투철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자. 경기의 현실 상황을 정확하게 아는 그 사람에게는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너무 명백하기에 시합결과에 대해서 마음이 자극되지 않고 매우 객관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축구의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관찰력을 지니지 못한 일반인들은 동족애와 애국심이 앞서 현실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항상 우리 팀이 이기기를 애타게 바랄 것이다.
이와같이 상황을 일으키는 조건들과 그 결과에 대해 욕망이나 성냄의 집착없이 바르게 인식하는 현명함을 갖춘 이라면 결과에 따른 양극의 감정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는 운동경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 모든 것에도 적용이 된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복잡한 인간관계와 다양한 일거리들을 접하며 좋은 것은 더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싫은 것과 할 수 없이 마주해야하는 괴로움 때문에 수시로 행복과 불행을 경험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부딫히는 상황에서도 마치 평정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운동경기를 관람하듯이 모든 상황을 평정심과 함께 맞이할 수 있으려면 우리 삶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삶의 바른 이해란 앞서 축구경기를 예로 든 것 같이 모든 상황은 우리의 개인적 바램과는 달리 오직 원인과 조건으로 인해 그 결과가 좌우되고 영원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런 삶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한 체 삶이 항상 자신들이 요구하고 바라는 방향으로만 흘러가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런 바램과 다르게 진행될 때 괴로움을 겪게 된다.
우리의 삶이란 애당초 언제고 변할 수 있기에 그나마 잠시 체험되는 세속적 행복감 또한 크게 의지할 만한 것이 못된다. 하지만 그런 우리 삶의 실상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으면 즐거움과 괴로움의 양극을 오가며 애착, 욕망, 분노, 좌절, 슬픔, 우울, 들뜸과 같은 무명 속에서 정신없이 살다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런 우리의 삶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추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에겐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런 바른 이해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관찰해 단계별로 경험되는 통찰지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수행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행에 필요한 도구로 이용해야 한다는 스승의 말씀이 떠오른다. 우리 자신에 대한 올바른 통찰만이 삶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줄 것이며 그런 통찰지혜는 욕망과 증오와 어리석음이 물결치는 험란하고 고달픈 삶의 바다를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는 소로(小路)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가 행복감과 즐거움을 경험하더라도 그런 행복한 순간도 무상하여 오래 지속되지 않고 수시로 돌변할 수 있음을 알 때 우리는 삶에서 경험되는 행복함에 도취되어 끄달려가지 않게 된다. 마찬가지로 기대치 않던 괴로움이 우리의 삶을 덮칠 때 가장 필요한 마음자세는 먼저 괴로움을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임이다. '왜 하필이면 지금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왜 내가 이 일로 이렇게 속을 썩어야 하는가?' 하고 저항하고 한탄할 수록 괴로움은 더 커진다. 괴로움도 현실로 받아들이고 차분한 마음으로 맞이할 때 괴로움을 인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기며 괴로움도 무상하여 결국엔 사라져 버릴 것이다. 괴로움이나 즐거움이 다가와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평정하고 슬기롭게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고 온전하게 수행을 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우리 모두 궁극적 목표인 열반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