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을 중요시 여기며 살아가는 재가자들에게 집중수련회는 큰 의미가 있다. 재가수행자로서 평상시 집에서 꾸준히 수행하는 것은 자신의 수행력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진보를 이룰 수 있기에 평상시에도 수행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수행의 절실함을 느끼는 재가자는 집에서 하는 수행으론 충분하지 못해 수시로 기회가 되는 만큼 집중수련회를 찾는다. 그들에게 집중수련회는 자신들의 수행을 점프 스타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집중수련회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집중수련회에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매일 매일 수행을 하기에 집에서 하는 수행과는 달리 수행에 가속도가 붙어 알아차림과 집중력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열반을 향해 전진하는 수행자들에게 집중수련회는 어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혜택을 제공한다. 하지만 집중수련회가 그렇게 고귀하고 값어치 있는 만큼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 수행에 관심있는 사람도 드물지만 수행에 관심은 있어도 집중수련회에 장기적으로 꾸준히 참가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그걸 볼 때 수련회에 참석하기에는 첫째 신심과 주변에 수행을 지도해 줄 수 있는 스승과 수행처가 있어야 하고 경제적, 시간적 여유도 허락되어야 가능한 것이기에 재가자로서 수행과 인연을 맺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까다로운지 알게 된다. 이렇게 모든 조건이 맞아 수련회에 참석하더라도 처음 하는 집중 수행은 결코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그런 집중수련회에 익숙해지기까지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지만 그 과정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에게 집중수련회는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고 비록 수행 과정은 힘들지만 그만큼의 보람을 매번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가 아무리 신심이 깊고 수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지극하더라도 집중수행에 대한 경험이 없고 세속에서 쌓인 습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으면 집중수련회는 매우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면에서 내가 수련회에서 경험하고 터득한 몇가지들을 집중수련회에 관심은 있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나 또한 집중수련회의 경험이 깊지 않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하지만 초보자들이 집중수련회에서 겪어야 하는 과정을 잘 알기에 그런 수행자들의 집중수행이 한결 더 수월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린다.
집 나오면 고생이다. 집처럼 편한 곳이 없다. 아무리 호화스럽고 삐까번적한 별 네개 호텔이라 할지라도 좀 머물다보면 집에서 느껴지는 안락함과 편안함이 그리워 질 것이다. 일류 호텔도 그러한데 수행처는 오죽하겠으랴? 왠만한 수행처의 숙소는 취침을 취하는데 필요한 요소만 겨우 갖추었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화장실, 샤워등 그 외 시설도 공동으로 다른 수행자들과 함께 사용해야 하므로 심리적인 불편함이 따를 수 있다. 이것이 큰 문제는 아니지만 이런 수행처에서 몸살이라도 난다면 그땐 정말 힘들어진다. 난 여지껏 수행처에서 몸살이 난 적이 없는데 딱 한번 쌀쌀한 밤에 바깥에서 경행을 하다 감기가 걸린 적이 있었다. 처음엔 목이 컬컬해지더니 좌선을 할 때 목이 계속 따끔 따끔해 집중이 매번 끊어졌다. 그 느낌이 매우 성가시고 불편했다. 그러다 차차 열이 나기 시작해 나중엔 감기약을 먹고 쉴 수 밖에 없었다. 수행처에도 미리 감기약들을 준비해 놨지만 나에게 잘 맞는, 내가 선호하는 브랜드의 감기약은 없었다. 선원에 있는 감기약은 약국에 가면 흔히 있는 싸구려 브랜드였지만 그것이라도 먹어야 했다. 지금 상태에선 좌선을 하기가 너무 고단하고 힘들어 좌선시간을 2-3번 빼먹으며 할 수 없이 방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감기몸살이 나면 집에서 뜨거운 차 끓여 마시며 편하게 침대에 누워서 쉬어도 힘이 든데 수행처의 낡고 우중충한 방구석에서 미열을 느끼며 혼자 누워있자니 기분이 정말 정말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더 누워서 쉬어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아픈 몸 끌고 법당으로 가 좌선을 계속해서 했다. 이것은 나의 수행력이 높아서가 아니라 도저히 그 누추한 방구석에서 더 이상 누워있기가 싫어서 억지로 법당으로 와서 수행을 한 것이다. 몸이 편찮은 상태에서 수행을 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그 허름한 방구석에 혼자 누워있는 것 보단 훨씬 낫았다. 이렇게 3일 정도 고생하고 나서 겨우 몸이 회복되었다. 그 다음부턴 온도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담요를 뒤집어 씌우고 수행을 하다가 그것도 부족해 수행기간 쓸 두터운 잠바를 따로 바깥에 나가서 구입해야 했다. 집에 두터운 잠바가 3~4개 있으면서도 수행기간동안 감기로 또 한번 앓아 눕기가 겁이나 할 수 없이 필요없는 잠바를 또 사야 했다. 하지만 수행이 끝날 때까지 요긴하게 잘 쓸 수 있었다.
수행처에서 집중수행을 할 때에는 수행처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지만 그렇다고 수행처가 집처럼 느껴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수행기간동안은 마치 한군데 정착하지 않고 인연따라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는 무소유의 청정한 수행자의 삶을 체험하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때로는 집없이 떠돌아 다니는 유랑민 신세가 된 것 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난 아무래도 수행이 부족하고 아직도 습이 많아서인지 전자보단 후자쪽으로 더 많이 느껴진다. 집도 없이 떠도는 신세에 몸까지 아프면 그건 정말 딱하고 처량하다. 만약 추운 계절이나 낮과 밤의 기온차이가 심한 곳에서 집중수행을 하게 될 때에는 두터운 옷과 담요(숄)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감기약등은 필수로 준비해야 한다. 두터운 옷과 숄은 부피가 커 짐이 많고 무거워져 다소 불편할지라도 일단 가져왔다가 필요가 없어 안 쓰는 것이 안 가져왔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없어서 못 쓰는 것보다 훨씬 낫다. 집중수행을 준비하는 분들이 이 부분을 소흘히 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유념하시길 바란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집처럼 편한 곳이 없다. 집이나 사회에서 편하고 자유롭게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아무런 구애받지 않고 맘대로 즐겼지만 수행처에는 하루 온종일 수행을 요구하고 그런 수행처의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집생각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전에는 집에서 생활할 때 당연히 여겼던 즐겨먹던 음식이나 그외 다양한 취미활동들이 수행처에 갇혀(?)있는 동안에는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찾아올 것이다. 아직 수련회가 끝날려면 1~2달 남았는데 수행을 시작한지 불과 며칠 안되 벌써 집생각이 난다면 이건 큰 문제다. 나머지 기간 동안 어떻게 견디려나? 하루 하루가 매우 힘들게 느껴질 것이다. 예전에 내가 4주 집중수행을 할 때였다. 그 수련회는 유난히 사람이 많아 좁은 공간에서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4주동안 같이 생활하며 수행하는 것이 날이 갈 수록 점점 힘들게 느껴졌다. 그 수련회에서는 수행을 시작한지 한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슬슬 집에 대한 그리움이 올라오기 시작했었다. 그러다 날이 갈 수록 집과 바깥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때 난 내가 여기에 집중수행을 한 1~2년 하러 왔다고 가정을 하고 '수행기간이 이렇게 기니 집생각할 필요없이 오래동안 느긋하게 수행이나 잘 해보자' 하고 상상을 하니 집생각을 내려 놓을 수 있어 그나마 효과가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집에 대한 그리움은 증가하였고 더 이상 이 방법은 효과가 없었다. 특히 마지막 1주일이 정말 힘들었다. 그때부터 수련회가 끝날 날을 6일 ,5일, 4일, 3일.... 손꼽아 세어가며 간절히 기다렸지만 하루 하루가 그렇게 견디기 어렵게 길고 힘들었다.
home-sweet-home
그렇게 집생각이 나고 수련회가 끝날 날이 기다려지는 것은 마음이 현재에 있지 못하고 과거 미래로 방황을 해서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더 효과적인 방법은 집이 그리운 마음이 올라올 때 즉시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걷고 있는데 집이나 가족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발이 땅에 닿는 느낌, 다리의 움직임과 그 외 느껴지는 감각등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지속하다 보면 외부로 떠돌던 마음을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와 지금 현재에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다. 만약 공양을 하러 줄 서있을 때나, 식사를 하고 있을 때, 화장실을 사용할 때, 그 외 어느 때라도 집생각이 떠오르면 그 상태에서 즉시 눈에 보이는 형상, 귀에 들리는 소리, 몸안에서 느껴지는 호흡등, 그 순간 대상이 감각기관과 접촉되며 느껴지는 느낌 중 가장 뚜렷한 것을 정확히 알아차려 곧바로 지금 현재로 마음을 가져오면 집생각은 말끔히 사라져버리며 집생각 때문에 잠시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을 분명히 자각하고 현재에 머무름을 지속한다. 지금은 오직 현재 이 순간만 존재할 뿐, 어제도 내일도 없고 집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후 집중수련회를 또 한번 4주 동안 하게 되었는데 그 땐 집생각이 날 때마다 위의 설명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순간 순간 차단하다 보니 어느새 벌써 수련회의 마지막 날이 되어 시간이 너무 빨리 간 것이 믿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아쉬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항상 알아차림으로 마음을 항상 현재로 가져올 수 있음으로 수행기간 동안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고 수행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집생각 날 때 뿐만 아니라 모든 순간을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시작해 밤에 잠자리에 누워 잠들기까지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 알아차려야 한다. 몸과 느낌을 알아차리는 데는 능숙하더라도 수행이 점점 힘들어지면 편안하고 아늑한 집이 그리워지면서 집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알아차림을 놓치고 끌려가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마음이 어지러울 수록 더 마음챙김을 해야 할 것이다.
It's a long journey.
재가자로서 집중수련회에 참석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얼마나 어렵게 참가한 수련회인데 이 기회에 정말 열심히 수행해서 큰 결과를 얻어 갈 것이다!' 하고 많은 수행자들은 결심할 것이다. 수행의 길에 접어든 사람으로서 누군들 수행의 진보를 이루어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하고 싶지 않겠는가? 열반은 고사하고 스님들이 법문하실 때 말하던, 그리고 책이나 인터넷에서 읽어본 그 높은 단계의 통찰지혜를 나도 경험해 봤으면....하는 마음이 간절히 일어날 것이다. 특히 다른 재가 수행자들의 생생한 경험담이나 수행일기는 우리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준다. 말로만 듣던 그런 높은 수행단계를 그들이 체험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매우 감동적인 타인의 수행담으로 격려받아 수행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은 매우 좋으나 자칫 잘못하면 수행결과에 대해 큰 집착을 일으키게 된다. '다른 수행자들이 체험한 단계를 나도 체험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수련회에 참가했다가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할 때 큰 실망과 괴로움이 시작된다. 수련회를 한번 하고 나면 수행이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더 잘 알게 된다. '어떻게 해서 그 사람들은 그런 높은 경지를 그렇게 빨리 증득했지? 나는 턱도 없었는데... 내가 수행을 잘못했나? 이 수행법이 나하곤 안 맞나?' 하고 의문이 들기도 하고 실망감이 올라오며 때로는 짜증도 날 것이다.
일반적으로 출가수행자가 재가수행자보단 수행진보가 빠르다. 그야 당연한 것이 풀타임 수행자하고 파트타임 수행자하곤 수행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크게 차이가 나기에 비교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수행을 하며 터득한 것은 보통 수행자는 두 부류로 갈리는데 일반 근기의 수행자와 상근기의 수행자가 있다. 상근기 수행자들은 왠만한 일반 수행자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도달할 수 있는 단계를 수행을 하기도 전에 혼자 스스로 경험하는 경우가 있고 집중력도 뛰어나 한번 수행을 시작하면 다른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높은 단계에 도달한다. 이것은 꼭 부처님 당시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나하고 잘 알고 지내는 수행력이 깊은 스님이 한분 계신데 그분이 미얀마에서 수행하실 때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여름방학 때 수행하러 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 한 학생이 단 일주일만에 도과를 성취했다고 한다. 이곳 미국에도 그런 상근기의 수행자들이 있는데 불과 짧은 기간안에 (짧게는 10일 ~ 길게 해봐야 10년이내) 도과를 성취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한국에도 이런 상근기 수행자들이 꽤 있다. 이걸 볼 때 상근기의 수행자들은 신분과 국적을 초월해 이 세상 곳곳에 퍼져 있는 것 같다. 이런 상근기의 수행자들은 출가자이건 재가자이건 한번 수행을 시작하면 놀라운 속도로 진보해 목적지에 남들보다 쉽게 도달한다. 이런 상근기 수행자들의 체험담을 가끔 접할 수 있게 되는데 일반수행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절대 남과 자신의 수행과정을 비교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고엔카법사님이 설하시길 수행을 하며 각자만의 쌓아온 행위, 업 (sankāra1) 가 표면에 올라와 소멸될 때 각각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에 모든 수행자들의 체험이 똑같을 수 없다고 하셨다. 설령 같은 일반근기의 수행자끼리도 각자 체험하는 것이 다를 수 있기에 '남이 체험한 것을 나도 똑같이 체험하겠지'하는 기대는 버려야 하는데 상근기 수행자의 체험과 자신의 수행체험을 비교한다면 오죽 하겠는가? 사람마다 쌓아온 업, 성향, 성격, 취향들이 다양하기에 수행을 하면서 체험하고 진보하는 과정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 남이 수행해서 좋은 경험을 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만의 개인적 상황안에서 그 나름대로의 노력과 그 때 필요한 조건들이 성숙되며 얻어진 결과일 뿐 나의 수행과정과 특별히 연관짓거나 비교하지 말고 오직 자신의 수행에만 몰두해야 할 것이다.
수행결과의 집착으로 우리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은 타인의 수행담 뿐만이 아니다. 여지껏 듣고 배워온 다양한 수행의 이론들도 그에 집착하는 한 수행은 더 힘들어 질 수 있다. 통찰지혜의 16단계라던지 삼법인이라던지 그 외 다른 이론과 사상들은 수행하는 기간동안에는 모두 바깥으로 멀리 던져버려라. 갖은 이론과 사상들을 머리 속에서 비우고 오직 지금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만 분명히 알아차리고 그런 알아차림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수행하다가 조금 특이한 현상이 체험되면 '이것은 통찰지혜의 몇번째 단계인가? 내가 무상을 봤나? 이것이 무아의 상태인가?' 하는 식으로 나름대로 추측하고 평가하는 것은 수행에 큰 장애가 된다.
수행을 하다보면 수행이 잘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어느 때에는 수행이 잘 안되고 더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 집중수련회에선 수행이 그렇게 수월했고 집에 돌아 와서도 수행이 잘 되 다음 집중수련회에는 진짜 큰 결과가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수련회에 가서 수행을 하면 오히려 예전보다 수행이 더 힘들고 안될 때가 있다. 이때 수행자는 크게 낙심하고 마음이 혼동스러워 지는데 이럴 때 스승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예전에 좋은 경험이 있었으면 그것은 그때의 조건적인 상황에 따라 나타난 결과일 뿐, 지금하고는 상관이 없으니 지나간 과거의 경험을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나타나는 현상만을 잘 알아차려라. 집에서 수행이 잘 되었더라도 수행처에 와서 수행을 할 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수행은 때와 장소, 그 외 다른 조건들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수행이 예전보다 더 안되는 것같이 느껴지는 것은 수행자들 사이에 흔히 있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 마음대로 조절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나타나는 현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오로지 알아차림할 뿐이다." 그리고 수행이 잘 안되는 것 같다고 수행의 진보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수행의 진보는 수행자 자신이 가늠하기 어렵다. 왠만한 수행자들에게 수행의 진보과정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높은 단계로 쉽고 빠르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난관과 장애에 부딫혀가며 발전과 퇴보를 거듭하면서 발전하는 것이기에 항상 자신이 원하는 대로 수행이 수월하게 되기를 기대해선 안됀다. 수행이 잘 된다고 들뜨지 말고 또 잘 안 된다고 낙담하지도 말아야 한다. 수행자로서의 임무는 지금 수행이 잘 되면 잘 되는 것을 알아차리고 잘 안 되면 안 되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수행자가 얼마만큼 깨어있어서 나타나는 대상을 정확히 잘 알아차리는가 이다. 지금 현재 상황이 자신이 바라던 바라지 않던 나타나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속세에서 생활할 때나 수행처에서 수행할 때 모두 적용된다. 우리 삶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항상 흐르지 않듯이 수행과정 또한 그러하나니. 조건이 성숙되고 때가 되면 지혜는 저절로 드러난다 했으니 수행의 결과는 법(法)에 맏기고 수행자는 열심히 꾸준히 수행만 해야 할 것이다.
아무런 목적없이 그냥 무작정 수행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행자의 분명한 목적은 모든 고통이 소멸된 고귀한 열반에 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왜 더 빠른 수행의 진보가 없는가 하고 조급한 마음을 내다간 수행은 더 힘들어지고 최상의 목적지인 열반은 우리로 부터 더욱 멀어질 것이다. 수행은 단거리 질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이라 했다. 수행은 힘들고 오래 걸리는 것임을 먼저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최상의 목적지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수행을 해 나가면서 의식이 차츰 가라앉고 성숙해지면서 여태까지 세간의 방식으론 경험해 보지 못한 내면의 평화를 경험하게 될 때 비로서 수행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수행을 하는 순간 순간이 고귀함을 알게 되 수행을 더 깊게 집중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 시간과 상황이 허락하는 만큼 집중수련회를 찾게 된다. 일년에 한 두번 얻는 어려운 휴가를 집중수련회에 활용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최고의 투자이다. 그런 집중수련회가 수행을 하려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힘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 또한 경험이 부족하고 또 더 많은 경험을 해야하지만 그나마 내가 얻은 작은 경험들을 수행에 관심이 있는 분들과 함께 나누려는 의미에서 이 글을 올린다. 더 많은 이들이 집중수행과 인연을 맺어 하루 하루 수행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얻기를 바라며...()
- 여러 의미가 있다. 그 뜻에 대해 더 정확히 알고 싶으면 불교 사이트들을 검색해보길 권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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